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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단편소설] 일개미

by 어푸푸푸 2021. 6. 29.

노래를 불렀다. 나에겐 정말 그렇게 들렸다.

 

*

내가 집에 오는 시각은 대략 자정이 되기 직전이었다. 아침에는 학교를 가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상. 사실 집이라기보다는 그냥 직사각형 박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고시원이었다. 학교 근처에 하나씩 있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런 고시원. 그런데 나는 항상 고시원이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버릴 수 없었다. 보십시오. 우리는 이만큼이나 낡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물론 오랜 역사만큼 각종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23명이나 있었다. (고시원 외벽에는 23명의 이름이 모두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나는 이 숫자를 볼 때마다 입주 당시 이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고시원 원장님의 미소가 떠올랐다. 역사만큼 바랜 백발의 머리도. 사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25년 된 이 낡은 고시원에서 23, 고시원의 총 방은 40개였으니 25년간 이곳을 거친 약 천 명의 사람 중에 23명이 합격한 소리가 도대체 무슨 자랑인가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이 고시원은

 

그냥 낡은 것이다. 자랑거리 따위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안정되었다. 어째서인지 나도 그 자랑스러운 23명 중 한명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는데 난 전혀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자랑거리 따위 하나 없는 인간. 인생에서 칭찬을 받아본 횟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고 그마저도 지면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박수를 받던 어린 시절에 집중되어 있었다. 성장하고 남들과 경쟁을 하며 비교 대상이 생긴 이후부터는 그런 칭찬을 받는 일도 없었다. 단 한가지만 빼고.

 

미술.

 

그림을 그리는 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깨작거리는 그림이야 어차피 누가 더 똑같이 그리고 누가 더 만화를 잘 그리는가 하는 수준이다. 나는 그런 쪽으로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부분은 정말 적당한 수준의 실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세상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백지가 있고 붓이 있고 색이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좋았고, 자위를 하지 않아도 좋았다. 손에 물감이 묻으면 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눈앞에 딸기잼이 보이면 딸기잼을 종이에 발랐다. 입시 미술을 가르쳤던 그 학원에서 나는 소문난 정신 나간 놈이었지만 내겐 모든 것이 도구였고 색이었으며 또 그림이었다. 이 미술이 자랑거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GOOD

 

이라는 짧은 글과 함께 트위터에 작은 소용돌이를 몰고 온 사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추천. 당시 나는 그것에 무척 설레었나 보다. 아마도 자랑스러운 23명 중 한명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날 이후 나는 마치 양옆 시야를 가린 경주마인 양 더욱 그림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내가 3일 동안 밤을 새며 어느 순간부터 캔버스 위에 토마토로 점을 찍기 시작했을 때,

 

우리 집은 망했다.

나는 자랑거리 하나 없는 인간이 되었다.

 

*

자정에 고시원 방에 들어와서는 씻지도 않고 컴퓨터를 먼저 켰다. 마우스를 잡고 클릭, 클릭. 얼마 전부터 마우스에서는 '틱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등학생 때 샀던 마우스니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작동이 된다는 것이 용하다는 생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이 조그마한 쥐조차도 지난 7년간 집안의 몰락에 다리 하나 정도는 절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나는 보채듯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래도 달려야 한다. 왜 달려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달려야 한다.

 

매일 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같은 행동 패턴을 반복했다. 컴퓨터를 켜고, 입사 지원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취업 정보 사이트에 접속하는 패턴. 이날도 1건의 메일이 왔다. 결과는 불합격.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은 말로 거절 의사를 표하는지 놀라울 정도다. 나는 순간 인간의 등급을 나누기 위해 비밀리에 조직된 정부기관에서 전국의 자랑거리 없는 인간들에게는 입사지원과 동시에 똑같은 멘트를 준비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형식적이었다. 10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도 모두 떨어졌다. 기껏 면접을 본 회사는 내게 사주를 물었다. 내 자랑거리를 태어난 시각에서 찾는 그들의 노력이 안쓰러웠다. 그런데,

 

그마저도 떨어졌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수천 개의 회사들은 수만 개의 이력서들을 모두 보는 걸까? 아니 볼 수는 있는 걸까? 하얀 종이에 검정색 잉크가 얼마나 많이 묻어 있는지부터 체크를 하며 걸러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애초에 그들에게는 없는 존재가 된다. 자랑거리도 없고 존재도 없다니. 하얀 종이에 점 하나만 찍어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그림도 있는데 잉크 양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면 너무 슬프잖아. 결국 취업이라는 것은 잉크 양을 극복하고 점수 계산기를 극복하고 얼굴을 마주 보고'멍청이'라는 소리에도 헤헤 웃을 수 있는 얼굴 테스트를 극복하고 나면 뽑히는 것이다. 이건 뭐

 

로또

 

나 다름없다.

 

*

개미였다. 작은 개미.

 

다음날도 아침에는 학교를 가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전히 자정이 조금 안된 시각에 방으로 돌아와 씻지도 않고 컴퓨터를 켰다. 마우스를 틱틱. 키보드를 타닥타닥. ? 개미다. 키보드 옆에 개미가 있었다. 개미는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사실 개미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내 방 책상 아래 벽에는 시멘트가 갈라진 틈이 있었다. 그 곳으로는 항상 일정한 양의 개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한 루트를 매일매일 왕복했다. 처음 이것을 발견했을 때는 개미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는데 딱히 그 루트를 벗어나는 일도 없었고 나를 방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뒀었다. 더군다나 사장님께 말한다고 한들 25년 동안 977명의 실패한 사람들도 관심을 갖지 않는 분이 하물며 개미에게나 관심을 가질지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살기로 다짐했다.

 

같이.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이렇게 책상 위까지 올라온 개미는 처음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루트를 벗어나다니. 녀석은 마치 나 같은 거대한 생물을 처음으로 보았고 그 전체 크기조차 짐작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연신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나도 개미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행동을 할까. 왜 올라왔을까. 그때 개미가 앞다리를 들더니 나를 부르듯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오라는 것인가. 설마 내가 가까이 갔을 때 수만 마리의 개미 떼들이 나를 덮친다는 계획을 세워둔 것은 아닐까. 어리석다. 이젠 개미마저 의심을 하다니. 비밀리에 조직된 정부기관이 주는 폐해는 생각보다 깊었다. 그런데도 나는 결국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개미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 갑자기 개미가 말을 했다. 놀랐어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놀라지 않았다. 마치 재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펐어야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슬프지 않았던 그 때처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00명 중에서도 특별하게 뛰어난 23명이 있는데, 수천 마리 개미 중에서 말하는 개미도 있을 수 있다 정도의 생각. 물론 이 역시 로또 같은 개념이지만. 개미는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리곤 꽤나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혹시 저랑 친구 하실 생각 없으세요?"

"친구요?"

"."

"혹시 암컷인가요?"

". 근데 교미는 못해요."

", 그런 의도로 물어본 것은 아니에요. 여자 목소리라서."

". 그렇군요. 죄송해요."

"친구하죠."

 

생각보다 간단했고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서로에 대한 이질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질감을 깨닫게 된 것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자신을 평범한 암컷 일개미라고 소개한 친구는 대뜸 말을 놓자고 했다. 불편하단다. 개미와 말을 놓는다는 것이 개미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나도 말을 놓기로 했다. 우리는 그 상태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그동안 책상 위까지 오는 길을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며칠 간의 관찰과 계획 끝에 드디어 오늘 올라올 수 있었다고 했다. 개미 수준의 뇌라서 다음에 올 때 길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곧 교대 시간이 다가와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오늘은 나와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한단다. 도와줄까? 아니. 혼자서 내려갈게. 그래야 혼자서 올라올 수 있으니까.

 

과연 내 친구다.

 

나는 조심스레 아래로 향하는 친구를 보며 한동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공간의 공백은 없었지만, 대화의 공백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고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였을까. 나는 나라는 인간의 크기마저 직사각형 고시원의 좁은 방에 눌러 담아버린 것일까. 모르겠다. 그래도 그것과는 별개로 꽤 기분 좋은 대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취업 로또가 아니라 이런 식의 로또가 터져버리다니 참 곤란하네.

 

*

다음 날부터 우리는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들인 양 자정마다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 수많은 개미들 중 친구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변별력을 가지게 되었고, 친구는 책상 위로 올라오는 지름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친구는 유난히 틱틱거리는 마우스 소리에 즐거워했다. 그 소리를 산업화에 따른 자연의 울음소리’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그런 단어들은 어디서 배워 온 걸까. 아무렴 상관없다. 나는 그 시간을 꽤나 즐거워하고 있었음이 분명했으니까, 그거면 된다. 일주일 지났을 때도 자정이 되자 어김없이 친구가 나타났다. 우리는 늘 그랬듯 대화를 나눴고 웃었고 떠들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했다.

 

"근데 왜 올라오려고 한 거야?? 아니. 왜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거야?"

"? 내 주변은 온통 개미잖아."

"그렇지. 그게 왜?"

"개미들은 어차피 개미만큼의 생각밖에 못해."

 

지금 이것도 개미만큼의 생각일까? 모르겠다. 친구는 이미 그녀의 의자가 되어버린 두루마리 화장지 위에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개미가 말을 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배를 드러내고 앉아있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섹시하다고 느꼈다면 내가 돌연변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너랑 친구가 되고 싶었어. 너는 이 공간에 유일한 다른 생물이니까."

"그래?"

"그치. 너 말곤 모두 우리 먹이인걸."

"하긴 그건 그렇지."

"너라면 분명 다른 시야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그렇겠지?"

 

뭐 다른 시야를 가졌다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친구는 더듬이를 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마우스를 쥐고 윈도우 바탕화면을 보며 괜스레 빙빙 돌렸다. 분명 어떤 류의 고민이 있으니 찾아왔겠지.

 

"말 못 할 고민 같은 것이 있는 거야?"

", 뭐라고 해야 하나. 인생에 대한 거야."

 

개미가 인생을 말한다. 주제 선정에 대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개미의 인생이라니. 다리를 저는 쥐가 틱틱하고 울었다. 본인도 인생이라면 한마디 하고 싶은가 보다. 미안. 나도 인생을 잘 모르지만 너와 같은 인생을 살아온 내가 너의 입장을 대변해볼게.

 

"인생?"

". 인생."

"어떤 인생?"

"친구. 나는 일개미야. 일개미로 태어났고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가 죽을 거야."

"그치? 사람도 평생을 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은 중요해."

 

일은 중요하다. 2평 고시원에 박힌 인생에게도, 다리를 저는 쥐에게도.

 

"일을 하는 것은 좋아. 근데 꼭 일이 그 일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 일?"

"우리 일개미들은 기본적으로 먹이를 찾아와야 해. 요즘 같은 겨울에 먹이가 제대로 나오는 곳이 어디 있겠어. 그래서 하루 종일 먹이를 찾으러 다녀야 해.. 그렇게 겨우 먹이를 구하고 집으로 오면 이제 애들을 봐야 해. 그러다가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는 녀석들이 나타나면 또 나가서 싸워야 해. 우린 교미도 할 수 없어.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그날까지 그저 같은 일만 반복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친구의 목소리는 약간 격양되었다. 그런 삶을 생각하니 그런 기분이 생기는 것도 이해는 됐다. 인간도 비슷하긴 하지만. 그리고 나도 비슷하겠지만. 나도 사실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팔리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가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좋으니 그저 원 없이 고등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넌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거네?"

"맞아."

"어떤 일?"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노래. 그리고 미술. 인간 등급을 나누는 정부기관에서도 취급 이하일 것 같은 특기. 물론 단번에 상위로 도약할 수 있지만 역시 이것도 로또.

 

"노래?"

"."

"무슨 노래?"

"그냥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확실히 노래는 그런 힘이 있지. 듣는 이는 누구야?"

"다른 개미들."

 

친구는 어느 날 문득 일개미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루에 내가 먹이를 먹는 양은 조금밖에 되지 않는데 그냥 혼자 살면서 본인이 먹을 양만 먹이를 모아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매일 오가는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나 세상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노래로 다른 개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랬다.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한동안의 고민 끝에 대답을 했을 때 친구는 두루마리 휴지 위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밖에선 현실에 지쳐 술을 먹고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는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갑자기 고맙다고 했다. 개미들의 표정은 잘 모르지만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고맙긴,

 

*

어쩌면 나는 내 상황을 친구에게 투영하여 보려 한 것은 아닐까. 인간도 일을 해야 하니까 혹은 먹이를 구해야 하니까 어떤 식으로든 얽매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친구가 노래 이야기를 하였을 때 어쩐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런 마음 한편엔 찢어진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실험해보고 싶었다는 생각도 분명히 있었다. 거대한 시스템에서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다른' 일을 선택한 친구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친구는 이후 며칠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멘트 벽이 갈라진 틈에서는 여전히 많은 수의 개미가 일정한 루트를 이동하고 있었다. 친구는 어쩌면 자신의 상사에게 자신의 꿈을 솔직하게 말하고 설득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밤, 친구가 나타났다. 광택이 사라진 친구의 몸에서 그간의 피로감이 전해졌다. 친구는 내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일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친구는 정해진 루트를

 

떠났다.

 

나는 친구가 떠난 후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종종 미술대학 건물에 위치한 미술용품 매장을 찾았다. 어째서 그곳으로 발걸음이 옮겨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 공간의 공기를 맡고 싶었다. 붓 냄새, 물감 냄새, 캔버스 천 냄새.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가 결국 빈손으로 나왔다. 그리고 친구가 떠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본적인 도구들을 샀다. 유난히 노을이 붉게 짙었던 날이었다.

 

그날은 자정 무렵에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덕분에 마우스도 틱틱 거리며 울지 않았다. 이 방에서 이제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은 없었다. 모니터 앞에 캔버스를 걸치고 붓 냄새를 맡았다. 그리웠던 냄새. 붓을 들고 물감에 찍을 요량으로 행동을 취했다가 한참을 멍하게 붓을 들고 있었다. 망설였다. 그리고 결국 팔레트를 덮어버렸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빨간딱지가 붙었던 집안, 미술을 하려면 집에 돈이 많아야 해라는 소리를 해대던 친구, 쉰 살이 넘은 나이까지 결혼도 못하고 55만 원에 초상화를 그려주던 아저씨.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이 방에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은 나 밖에 없었다.

 

*

친구

 

를 만났다. 다음 날 아침에 강의를 듣기 위해 고시원 현관을 나설 때였다. 현관을 나오면 벽돌로 쌓은 작은 담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옛날부터 몇몇의 거미들이 거미줄을 쳐놓고 있었다. 친구는 그중 하나의 거미줄에 걸려있었다. 그냥, 딱 봐도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야. 친구야. 친구는 말이 없었다. 이미 거미줄이 친구의 몸을 감싸고 있었고 머리와 가슴과 배의 일부분이 보였다. 결국

 

이렇게 죽었구나.

 

친구의 배는 체액이 빨린 탓인지 홀쭉하게 말라있었다. 나는 학교를 가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6개의 다리 중 4개는 멀쩡했지만 2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친구가 그렇게나 아꼈던 더듬이는 볼품없이 거미줄에 엉켜있었다. 나는 슬픈지 어떤지 모를 감정이 벅차오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친구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움직였다. 오므렸다. 폈다. 오므렸다. 폈다. 그리고 다시 오므렸다. 폈다.

 

노래를 불렀다. 나에겐 정말 그렇게 들렸다.

 

'너는 너라서 아름다운 거야.

너의 인생을, 너의 이야기를 찾아'

 

친구가 떠나기 직전에 불렀던 노래다. 가사가 마음에 들었던 그 노래. 귓가에 잔잔히 울리는 친구의 목소리. 친구는 웃고 있었다. 나는 안다.

 

나는 그 길로 다시 방으로 뛰어 올라왔다. 붓을 들었고 물을 받아오고 물감을 열었다. 무엇을 그리겠다는 생각도 없이 미친 듯이 캔버스 위를 휘저었다. 회백색 고시원이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의 색체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지 않아도 하지 않으면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일을 하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캔버스를 넘어 모니터, TV, 책장, 책상, 벽 할 것 없이 모든 곳을 붓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색이 가득 차고 눈물이 가득 찼다. 얼마나 하고 싶었던가. 얼마나 이 냄새를, 이 색채를 보고 싶었던가.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가슴속은 비워져 갔다.

 

귓가에는 여전히 친구의 노래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