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날에도 굳이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빗소리를 좋아했고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역시 집 안에 담기는 냄새가 싫었던 탓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애용하던 화장실 담배 타임도 그만두게 되었다. 비 냄새가 좋았다. 날씨는 조금 쌀쌀해지는 가을이었고 시각은 새벽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어딘가 멍한 기분이 된다. 분명 어떤 류의 생각을 정리하러 나왔는데 그런 생각이 뭐였더라, 정도의 머리 상태가 된다. 그런 순간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요즘의 난 도무지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 한번쯤 분류 작업을 할 때도 되었는데 자꾸만 머엉, 해지니. 이거야 원. 결국 불똥이 지구 어딘가로 날아가서 애처롭게 빛날 때까지 무엇을 정리하러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집안에 들어왔다. 제법 쌀쌀해졌네, 라는 감각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결국 이렇게 또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며 잠을 청하게 된다. 아참, ASMR을 틀어야지. 잠을 잘 자야 하니까.
조그마한 회사를 다녔고 곧잘 일을 해냈고 나는 정시에 출근하여 정시에 퇴근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어떻게 하면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고, 결국 매일 그 고민을 하며 성과없이 귀가를 하기 일쑤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배가 고프니 밥을 안쳤다. 쌀이 밥이 되는 고귀한 시간동안 나는 또다시 약 30분의 시간동안 무엇을 하는 것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며 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며 보냈다. 하얀 쌀밥의 젖은 냄새가 날 때 즈음에는 당연스럽게도 반찬을 준비했다. 설거지는 하고 싶지 않으니 최소한의 그릇 (대게의 경우 양은 그릇) 만을 사용하여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유투브를 애용했다. 메인은 저녁 식사 후의 시간들이었다. 나는 월수금과 화목으로 요일을 나누어 해야할 일들을 계획했다. 꿈도 명확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언젠가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도 직장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직장에서의 규칙적인 생활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상호 작용들 역시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또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을 글을 쓰는 것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저녁 시간에는 대부분 영화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시간들로 계획을 한다. 나는 조금씩이지만 나아가는 인간이니까.
아버지한테 전화 좀 해봐라.
메시지가 도착했다. 굳이 잠금 해제를 하지 않아도 바탕화면에는 엄마가 보낸 메시지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지금은 책을 읽어야 하니 답장을 할 수가 없다. 확인을 하지 않았다가 이따 답장을 해야지. 그리고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어째 오늘은 월요일이라 조금 피곤했다. 스르르 눈이 감겨왔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잠을 깼을 때는 새벽 4시 무렵이었다. 담배를 입에 물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쌀쌀하지만 외투를 걸치지는 않았다. 약간 추운 상태에서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들고 나온 핸드폰에는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두통 남겨져 있었다. 새벽 4시라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내일 전화를 해야 겠다. 너무 늦은 시각이야.
출근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크지 않은 기업이지만 나는 시작부터 함께 했기에 꽤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또 새로운 기분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부하 직원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내가 도저히 손이 딸려 할 수 없는 일들을 맡기면 마치 내가 한 것과 같이 처리해낸다. 그리고 나는 내가 했다고 보고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저 손이 모자랐기 때문이니까. 간단하다. 그래서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점심 시간이 되었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른 행동보다 먼저 엄마의 전화가 왔다. 점심 식사는 끝났지만 담배를 펴야하는 시간인데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곧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어제 왜 전화를 하지 않았냐고 했고 나는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오늘은 아버지께 전화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나와 통화를 하면 그래도 기분 좋아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엄마와 아버지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늘 진 집안과 말없이 침대에 누운 아버지와 거실 소파에서 TV를 시청하는 집안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쳤다. 엄마와의 통화에서도 담배는 여전히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피워야 하는 시각이니까, 어쩔 수 없다.
퇴근은 항상 붐볐다. 지방엔 갈 일도 없는데 난 언제나 고속버스터미널역에 서있다. 독특한 역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 보인다. 서울의 퇴근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시골 할머니의 커다란 보따리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압축의 신음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나는 부천시청역까지 가는 지하철을 한 대 흘려보내고는 온수행 열차에 올라탄다. 비교적 사람이 적다. 그 말은 즉, 부천 사는 인간들이 무지막지하게 많다는 의미다. 어째서 이렇게 서울로 달려들어선 매일 출퇴근 시간대마다 사람을 괴롭히나 싶기도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광명에 살았다. 지하철에서는 주로 책을 본다. 사실 책을 굉장히 느리게 읽어서 효율을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은 속독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한문장, 한문장을 속으로 읽어 내려간다. 집중이 잘 될 때는 약 30분동안 내 기준에선 꽤 많은 분량을 읽어낸다. 하지만 그런 날은 주 5일 중 대략 하루나 이틀정도다. 나는 어째서인지 자꾸만 옆에 있는 사람들의 핸드폰에 눈이 간다. 카톡을 하는 사람들,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내 옆을 번갈아가며 지킨다. 나는 그들의 가장 비밀스럽고 은밀한 영역들을 훔쳐본다. 이게 생각보다 재밌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자면 관찰도 책을 읽는 것만큼 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또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밥을 안쳤고 밥이 준비되는 시간동안 오늘 저녁 식사 후의 메인 타임엔 무엇을 할까를 궁리했다. 무엇을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나의 꿈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래도 우선은 밥을 먹는 시간에 무엇을 볼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조금은 힘들고 어려운 작업들을 해야 하니까 저녁을 먹는 시간만이라도 조금은 머리를 식혀야 겠지? 하루종일 일을 하느라 지친 두뇌를 좀 풀어두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라는 생각으로 유투브의 예능을 찾아 헤맨다. 그렇다고 예능을 볼 수는 없다. 1시간 반짜리 예능을 처음부터 보기엔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결국 선택한 것은 스타크래프트 동영상이었다. 시간도 20분에서 30분 정도 수준이니 적당하다. 그렇게 다시 저녁 식사를 먹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바로 글을 쓰는 날이다. 이제 곧 신춘문예가 오기에 이렇게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자. 글을 어디서부터 쓰는 것이 좋을까. 가만, 작년에 제출했던 최종본들을 어디에 뒀지? 데스크탑? 노트북? 회사 컴퓨터? 일단 그것부터 모아야 겠다. 지금까지 썼던 파일들을 모아서 퇴고를 진행해야지.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으니, 갑자기 글을 쓰려면 잘 써지지 않을 테니 기존에 썼던 내 작품들의 퇴고를 먼저 해야겠다.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썼던 단편작을 읽다 잠이 든 모양이다. 다섯 개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썼던 작품도 읽지 못하고 잠이 들다니, 자신이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시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왔다. 며칠 전에 비가 온 뒤로 부쩍 추워졌다. 하지만 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다.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으니까. 어느새 내일이면 수요일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참 빠르게 느껴진다. 일도, 글도 생각보다 시간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문득 조급함을 느낀다. 잠이 드는 게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헛된 탓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앞으로의, 당장 오늘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담배를 연거푸 입에 물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곧 모습을 드러냈다. 동네에서도 사람을 잘 따르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배가 고픈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만있자 집에 고양이가 먹어도 될 간식이 있었던가. 예전에 방에서 주인 몰래 키웠던 낭랑이는 전혀 간식을 먹지 않았는데. 잘 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고양이 간식을 모아두던 신발장 꼭대기 칸까지 보았지만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 녀석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그르릉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빨리 손을 씻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남은 몇시간이라도 편하게 자야 된다고 주문을 외우듯 잠이 들었다. 머리맡 핸드폰은 조용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 했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은 다음날 점심식사 후였다. 담배를 피워야 하는 시각이었지만 그 날은 협력사와의 미팅이 예정되어있었다. 협력사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 후 사무실로 복귀하여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떠올랐던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선은 미팅에 참석했다. 미팅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다음 분기에 이뤄질 마케팅 방안에 대한 믹스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미팅을 끝나고 함께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가졌다. 협력사 직원이 애연가라는 사실은 이렇게 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협력사 팀장은 다음 주부터 휴가라며, 옆에 있던 부하 직원에게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하였다. 팀장은 올해 첫 휴가라며 쌀쌀해졌을 때 와이프와 함께 따뜻한 곳을 다녀온다고 하였다. 갓 돌이 지난 아기는 친정에 맡긴다고 했다. 돌이 지나니 하루가 다르게 장난이 심해져서 함께 여행을 갔다가는 쉬러가는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가는 것 같을 것이라며 웃었다. 나도 그렇죠, 라며 동조했다. 나는 애가 없다. 결국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은 엄마라는 글자가 핸드폰의 진동과 함께 떴을 때였다. 지하철이었지만 (나는 공공장소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울부짖으며 내게
왜 전화를 안했노
라고 했다. 나는 이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웹소설/단편소설] 당신의 칫솔을 버렸다 (0) | 2023.07.12 |
---|---|
[웹소설/단편소설] 양말은 두고 왔다 (0) | 2023.07.12 |
[웹소설/단편소설] 이별에 대하여 (0) | 2023.07.12 |
[웹소설/단편소설] 출근길 (0) | 2023.07.12 |
[웹소설/단편소설] 환경진화론 (0) | 202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