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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단편소설] 양말은 두고 왔다

by 어푸푸푸 2023. 7. 12.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앞으로 뒤로 밀고 당기면서 생각을 해봐도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내겐 인격이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까. 기억은 제대로 나지 않지만, 그래도 울었을 텐데. 울었을 텐데, 그러면 싫다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한 것은 아닐까. 엄마라는 사람이 자식이라는 사람을 버리는 이유는 당연히 있겠지만 그 순간, 나를 놓고 떠나가던 그 순간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시간 이후로 줄곧 궁금했다. 왜 나를 버렸는지가 아니라 나를 버렸던 그 순간에는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바닥이 차가웠다. 여름이 지났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주에 비에 젖어있던 매트리스를 챙겨서 들고 왔어야 했다. 곰팡이가 얼룩져있었어도, 스프링이 반쯤 드러나 있었어도.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의 새벽은 제법 쌀쌀했다. 가만히 누워서 들어오는 빛을 보고 있었다. 이제와서 여름 이불을 주워오며 겨울 이불을 버린 나를 탓할 수는 없었다. 바닥의 냉기가 등을 타고 발 끝으로 번져나갔다. 생각의 끝은 항상 엄마였다. 시설에 있을 때는 생각도 나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도 많이 떠오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힘들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한뼘 분량의 빛이 벽 어딘가를 비추고 있다. 순간 몸을 웅크리고 웅크려 그 한뼘 분량의 빛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은 점점 아래로 향하고 크기는 작아졌다. 그 빛이 몇달전에 마신 빈 소주병에 닿았을 때 나는 몸을 일으켰다. 씻어야 한다.

 

핸드폰이 끊겼다. 정확히 시설을 나온 지 3개월만이었다.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수입과 지출의 비율이 맞지 않았다. 지출을 줄이고 줄인 후 마지막엔 결국 핸드폰을 해지했다. 사실 아쉽다는 감정도 없었다. 어차피 연락을 하던 사람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기껏해야 시설 선생님들, 혹은 시설 친구들 정도 였다. 그래도 조금은 슬펐다.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었기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 일어난다. 혼자 똥을 싸고 혼자 자위를 하고 혼자 운다. 어쩌면, 으로 시작되는 연락조차 이젠 올 수 없다. 그런 사실이 조금은 더 외롭게 했다. 공장은 2교대로 돌아갔다. 핸드폰이 없으니 나는 좀 더 일찍 출근해야 했다. 경북 어딘가 시골에 위치한 공장이었는데, 간단한 부품을 만들어 보다 더 큰 공장으로 납품을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하청의 하청이지, 라는 말을 내뱉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하게 몰랐다. 한뼘 분량의 공간에서 나는 차례 차례 밀려들어오는 조각들을 체크한다. 이 시간들은 꽤나 좋다. 시간을 잊게 해준다. 생각도 지워주고 혼자라는 사실도 지워준다. 이 조각들은 같은 듯 미묘하게 다르다. 4개월이 지나니 그런 것들이 보였다. 선배는 그것을 노련미지, 노련미 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월급은 120만원 정도였다. 밥을 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강원도 어딘가 시골에 위치한 공장을 다니는 시설 동기는 숙소도 제공해준다고 하던데, 나는 어째서 경북 어딘가로 왔는지 사실 조금 후회도 했다.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11시간 30분 정도였다. 점심시간은 한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식사 후 곧장 일을 하기 위해 돌아왔다. 외국인이 제법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내게 반말을 했다. 선배에게도 반말을 했다. 외국인들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은 보통 어둑해질 시각이었다. 집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뜨내기 손님이나 묵을 것 같은 여관방과 유사했다.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에는 항상 따뜻한 색의 빛이 새어나왔다. 거실에는 거대한 텔레비전이 놓여있었고 세식구는 항상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저기, 학생. 잠깐 얘기 좀 해. 주인 아줌마가 나를 부른 것은 이 곳에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 된 시기였다. 시설에 있던 선생님 또래로 보였던 아줌마는 내게 본인의 딸이 불편해하니 거실을 훔쳐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대문을 조용히 열쇠로 열고 조용히 방에 들어왔다. 한쪽 벽에 맺힌 한뼘만한 달빛만이 존재했다.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옷을 벗었고 곧장 씻기 시작했다. 공장 특유의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기침이 조금 나왔고 조금 추웠다. 불을 끄고 누웠다. 한뼘의 달빛이 조금 내려왔다. 빈 소주병 즈음 도착하면 난 잠이 들 것이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선배가 사라진 것은 두달 전이었다. 그때의 난 말을 했다. 선배가 말을 걸었고 나는 대답을 하는 패턴이었다. 선배는 꽤나 수다스러운 사람이었고, 꽤나 성실했다.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도 어딘가의 시설에서 자랐다고 했다. 부모는 찾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난 선배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가 갔던 발자취를 따라가면 나도 성공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행복,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이틀 이상 면도를 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작업복을 손수 세탁할 정도로 열의가 넘치고 성실했다. 선배는 나를 챙겼고 나는 그를 따랐다. 선배의 집을 방문한 것은 선배가 사라지기 며칠 전이었다. 선배의 술 버릇은 양말을 벗는 것이었다. 맨발의 그는 신발을 손에 들곤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선배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난 그를 따랐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거리감은 유지하고 있었다. 논두렁을 지나며, 여기도 곧 있으면 장마 때문에 못지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꽤 많은 거리를 걸었다. 선배의 집은 산 중턱 정도로 인식되는 곳에 있었다. 그곳에는 집이 있었고,

 

집이 없었다.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오래된 초가집은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선배는 기둥이 휘어진 툇마루에 앉아선 본인의 양말을 찾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 역시 선배의 술버릇이었겠다 싶었다. 꽤 큰 달이 떴던 밤이었다. 언덕 아래에는 뛰엄뛰엄 주황빛 가로등이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자전거가 도로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지평선 끝에선 붉은 색 테일라이트의 줄이 하늘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다. 선배는 내게 양말을 찾아달라고 했다. 양말은 산 아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산 아래를 보며 술집의 위치를 가늠하곤, 가는 길에 보겠노라고 했다. 그 사이 선배는 잠이 들었다. 선배의 방에는 베개 하나와 양초 두개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배의 실종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그의 빈자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 역시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도 나도 100%의 의지는 하지 않았으니까. 시설 출신들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믿지 않는다. 가장 완벽한 핏줄에게 버림 받은 존재기에 기본적으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선배는 사라졌다. 나는 그 사이 말을 하는 법을 잊었다. 희미해져갔다.

 

어떤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찾은 사람이 있었다. 핑크색 자켓을 입은 아줌마였다. 40대인지 50대인지 햇갈렸다. 여자의 나이도 역시 알 수가 없다. 아줌마는 내게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냐고 했다. 나는 누구시냐고 했다. 공장은 쉼없이 돌아갔다. 한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줌마는 시설에서 왔다고 했다. 처음 보는 분이라고 했더니 이번에 들어왔단다. 남편이 돈벌이가 시원치않아 다시 일을 하게 됐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곤 불쑥 사진을 한장 내밀었다. 엄마라고 했다. 내 엄마라고 했다. 어딘가에 살고 있단다. 만나볼 생각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을 주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진은 받았다. 멍하니 손에 들고 있는 사이 아줌마는 공장 사무실로 향해가고 있었다. 돌아보니 물컵을 손에 쥐곤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나를 보던 사람은 아줌마의 당당함에 고개를 젓곤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아줌마에게 나는, 만나볼래요 라고 말했다. 공장은 여전히 쉼없이 돌아갔다.

 

달라질까, 싶었다. 엄마에게 그때의 감정이 어땠었는지를 듣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한뼘만한 빛이 두번을 왕복하는 동안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했다. 다음주 일요일이었다. 아줌마는 공장 전화로 내게 그렇게 알려왔다. 버스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면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그곳은 시설과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아무렴,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다시 한뼘만한 빛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는 그 속에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커버렸다. 햇빛 속에서 뛰어노는 것은 엄마의 보호가 필요했다. 공장은 쉼없이 돌아갔고, 나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조각들을 체크했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선배의 소식이 들려왔다. 선배를 찾는 다는 소식이었다. 선배는 어딘가에서도 또 실종되었다. 선배의 집을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들은 형사라고 했고 선배는 유력한 용의자라고 했다. 형사는 내게 선배가 나와 같은 시설 출신이었다고 했다. 형사는 그 시설이 위치한 지역의 형사였다.

 

불면은 가속됐다.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깜빡이던 형광등은 결국 꺼져버렸다. 나는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자위도 하지 않았으며 말도 하지 않는 무색무취의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줌마는 내게 데리러 갈까, 라고 물었다. 그 목소리엔 데리러 가기 싫다는 억양이 묻어났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몇시인지도 모를 한밤 중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문을 열 때면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난 이후부터 난 귀가 후 외출을 하지 않았었다. 주인집 거실에서 환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또 조용히 집 밖을 나왔다. 날이 밝으면 나는 엄마를 보러 가야 했다. 형사는 직원 주소도 모르는 회사가 어딨냐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는 다음주 중으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달빛이 꽤나 밝았다. 몇개인지 모를 주황빛 가로등을 지났다. 조금 쌀쌀했다. 슬슬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리조트를 지을 것이라며 엎어놓은 길을 한걸음 씩 내딛었다. 눈앞엔 비틀거리는 선배가 보였다. 용케도 이런 길을 맨발로 갔었구나 싶었다. 신발을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땅에 발이 닿자 생각보다 많은 자극이 전해져 왔다.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선배가 흥에 취해 노래를 불렀다. 뭔가 슬픈 음이었다. 그때의 선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집에 살면서, 매일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도 그런 집에 살았던 것일까. 트럭이 지났음직한 굴곡이 많은 길을 한참을 올랐다. 앞선 선배는 이미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곧 나도 도착했다. 선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선배가 살해한 사람은 선배의 아빠였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발을 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발은 더러운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손에 든 신발을 가만히 바닥에 내려두었다. 휘어진 기둥에 비스듬히 기댄 채 하늘을 보았다. 술을 마시고 싶었다. 지출을 줄일 때 가장 먼저 줄인 것이 술값이었다. 생각해보니 왜 그랬었나 싶었다. 커다란 달에 엄마가 있었다. 아줌마가 건네준 사진 속 얼굴이 그대로 그려졌다. 내가 이 사람과 닮았을까? 최근에 거울을 본 기억이 없다. 내 얼굴을 상상하니 사진 속 여자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방안에는 구멍난 창문 사이로 한뼘만큼의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나는 누운 자세로 고개를 위로 젓힌 채 그 빛을 보고 있었다. 문득 자위가 하고 싶은 생각에 자위도 곁들였다.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위를 하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비틀거리던 선배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도 사라졌다. 나는 엄마를 만나면 엄마를 죽이게 될까. 그건 모르겠다. 일단 궁금한 건 들어야겠지. 바지를 입고 신발을 신고 다시 일어났다. 저 멀리 붉은 테일 라이트가 간간히 지나갔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선배는 데리고 가지 않기로 했다. 선배의 인생은 선배의 것이니까. 신발을 신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말은 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