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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단편소설] 요즘의 당신 비가 내리던 날에도 굳이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빗소리를 좋아했고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역시 집 안에 담기는 냄새가 싫었던 탓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애용하던 화장실 담배 타임도 그만두게 되었다. 비 냄새가 좋았다. 날씨는 조금 쌀쌀해지는 가을이었고 시각은 새벽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어딘가 멍한 기분이 된다. 분명 어떤 류의 생각을 정리하러 나왔는데 그런 생각이 뭐였더라, 정도의 머리 상태가 된다. 그런 순간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요즘의 난 도무지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 한번쯤 분류 작업을 할 때도 되었는데 자꾸만 머엉, 해지니. 이거야 원. 결국 불똥이 지구 어딘가로 날아가서 애처롭게 빛날 때까지 무엇을 정리하러 나왔는지 알 수 없는 .. 2023. 7. 12.
[웹소설/단편소설] 이별에 대하여 엄지가 빨갛게 올랐다. 수염이 자란 탓인지 어딘가 뾰족한 곳에 긁힌 것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나는 어떤 류의 현상에 대해 도무지 왜 그런지를 알 지 못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 조차 깨닫게 된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관계에서도 이런 식이었는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너는 내 앞에 놓인 수저에 빨갛게 달아오른 조갯살을 얹어놓았다. 그것도 30분 전에 말이다. 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너는 나를 보았다. 나는 가만히 수저에 놓인 조갯살을 보았다. 조갯살을 계속해서 보니 그 어원에 대해서까지 파고들게 되었다. 너의 눈에 나는 어떤 류의 생각의 논리를 잡고 잡고 이어 잡는 것처럼 보였을까 싶다. 그런건 아니었는데. 그냥, 조갯살이 눈앞.. 2023. 7. 12.
[웹소설/단편소설] 출근길 7시 40분. 버스가 늦다. 3분 후에 도착한다는 버스는 감감무소식이다. 또 학교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이럴거면 차라리 걸어서 창동역까지 가는 것이 낫겠다고 매일, 7시 40분에 생각을 한다. 생각만 한다. 머릿 속에는 깜빡이는 비상등을 켠 수많은 차량들이 본인의 자식들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클락션 소리와 다녀올게 라는 인사 소리. 그 뒤에, 아주 아주 뒤에 여유로운 우리 버스 기사님. 누군가의 자식들의 등교를 위해 내 출근이 위협 받고 있다. 3분이 30분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결국 정류장 뒤편으로 돌아가 가방 속 파우치를 연 후 담배를 입에 문다. 아침에 피는 담배가 몸에 더 해롭다고 했는데, 라고 생각만 한다. 한손으로 머리를 만진다. 마르지 않.. 2023. 7. 12.
[웹소설/단편소설] 환경진화론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집에 얹어진 지붕을 수리하겠다는데, 어째서 구청에 허가를 받아야 되는 것인가. 하루 종일 속이 터져 한숨만 쉬고 있는 내게 아내가 조용히 타일렀다. 거, 눈 꼭 감고 다녀와요. 당신 요즘 너무 예민해서 그런거야. 원래 법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래요. 아내의 핀잔에 속만 더 쓰리다. 아니, 누가 그래? 민찬이가 그러죠. 아들놈이 그랬단다. 법을 공부하는 아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 외투를 껴입는다. 괜스레 신경질이 난다. 아, 그 놈은 왜 전화 한통 없대? 공부하느라 바쁜가보죠. 행시인가 뭐시긴가가 그렇게 쉽나요. 아내는 이미 TV를 틀었다. 철 지난 드라마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죽고, 또 누군가가 죽고 개도 죽고 사람도 죽는 그런 드라마. 나는 신분증과 .. 2021.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