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에 강식이다.
아버지는 강하고, 나는 약했다. 술만 먹으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것인지, 어릴적부터 이 인간에게는 복종하라고 세뇌를 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강하고, 나는 약했다. 나는 이것을 약육강식으로 이해를 했다.
새벽 6시, 누군가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놀라서 일어난 상황에 아버지는 없었다. 엄마는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놀랄 오자를 그리며, 어버버. 나는 어떤 미친 새끼가 라면서도 몸은 이내 후덜덜. 아마도 그런 기분은 겪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거대한 남자들 (아버지보다 훨씬 큰) 이 욕을 하며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 알고 봤더니 집을 나가야 하는 날이였댄다.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이것도 역시 어른이 되면 알 수 있는 레벨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철거일이 코 앞이라고 했다. 엄마는 집안에 숨어선 나오지도 못했다. 나는 약하니 약한 동물의 모습으로 부르르. 그 덩치 큰 동물들은 험한 표정으로 우르르. 가만 생각해보면 항상 이런 날엔 아버지가
없다.
학교를 가야 한다. 학교를 가는 것은 좋다. 그 곳에선 내가 강자다. 학교에는 덩치 큰 동물들이 없고, 다 고만고만하다. 아버지 수준조차도 되지 않는 것들이 곳곳에서 잘난척을 하고 있다. 내 어미는 내가 먹여살려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돈을 번다. 아니, 사실 이미 괜찮은 시스템을 갖췄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2교시가 끝난 후 하나둘씩 내 앞으로 온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체크를 한다. 철거민이 빠져나갔는지를 체크하던 그 동물처럼. 그러고보니 요즘 민재 새끼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3일까진 봐주는데 더이상 보이지 않으면 곤란하다. 어제로 부탄가스와 라면이 모두 바닥났다. 별 수 없다. 급한 놈이 우물을 파는 법이니. 민재를 만나야 겠다. 어디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까. 별 수 없다. 약한 동물은 항상 그렇게 떨 수 밖에.
엄마처럼.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두번정도 되려나, 나도 내가 살기 바빴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 생각이란 것이 무엇이냐면 엄마는 내가 학교를 간 후엔 어떤 시간을 보낼까 였다. 어렸을 때 엄마는 억지로 웃었고, 지금의 엄마는 나만 보면 내 뒤로 숨었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 마냥. 내가 이만큼 잘 컸으니 내 뒤로 숨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보면 미친 사람 같을 때가 있다. 사리분별을 잘 못하는?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항상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곤 했다. 엄마가 저러니 아버지가 화가 난다고도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인데, 강하니 어쩔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민재의 용돈을 뺏을 이유도 권리도 없지만 나는 강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도 나는 항상 애들한테 묻긴 한다. 너,
아침은 먹고 나온 거냐고.
그럼 다들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돈을 받는다. 간단하지. 나는 아침도, 어제 저녁도 못먹었는걸. 아르바이트만으론 우리 가족을 먹여살릴 순 없다. 더군다나 그정도론 확실하게 동생을 데려올 수도 없다. 친척에게 맡겨진 동생까지 데려와서 살려면 월 50만원으로는 꿈도 꿀 수 없다. 나름의 고뇌가 벅차다. 민재가 반에 없었다. 애들에게 물어보니 며칠째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며칠이라는 시기를 가만히 거슬러보니 몇번의 주먹이 오갔던 날이었다. 아침 일찍 술 취한 아버지가 바른 생활 샐러리맨의 이른 귀가를 하며 내 얼굴을 퍽퍽퍽, 나는 아침 일찍 학교로 도망친 후 민재에게 멍멍멍. 아, 그때인가. 약해빠진 새끼.
그리고 며칠 후 철거가 시작됐다.
이 철거라는 것이 고양이 그루밍하듯 낼름낼름거리는 것이 아니더라. 몇 번의 쿵쿵. 몇 번의 시벌시벌 후에 뻥 뚫린 벽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눈물이 그냥 나오더라. 욕도 한움쿰 나왔는데 덩치 큰 동물들의 으르렁 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건 또 쏙 들어가고, 그저 눈물만 왈칵.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고 말을 해도 나오는 건 부라린 눈. 옆에 옆에 집에 살던 시인 나부랭이라는 어른은 그저 으허어. 거봐. 어른이 되어도 모르는 거잖아. 엄마는 내 뒤에 숨어선 오들오들. 큰 가방에 옷가지와 필요한 물건들을 대충 넣었다. 엄마에게 외투와 신발을 신기고 손을 끌어 잡았다. 나가야 해. 나가야 한다고. 엄마의 동공은 흔들흔들. 그 와중에 엄마가 챙기는 건 동생도 나온 가족 사진.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약육에 강식은 여전히 쉽지 않다. 난 언제쯤 강해질 수 있을까. 이어지는 쿵쿵. 엄마와 함께 나온 길바닥. 우리 집앞 골목에 길게 그어진 경계선. 경계선 밖에서 우릴 쳐다보는 이웃사촌들. 즐겁게 하하하. 그리고 울린 핸드폰 문자메시지.
야, 민재가 자살했대.
이런 날엔 아버지도 없다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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