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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단편소설] 너의 시간 이쪽으로 오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겨울임에도 손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간호사의 걸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토요일 오후, 공식적인 영업이 끝난 병원의 복도는 어딘지 모르게 텅 비어 보였다. 그 공간을 블라인드를 적신 햇빛이 메우고 있었다. 먼지가 둥실거리는 화창한 창틀을 보니 어딘가 다른 세계 같았다. 고요했다. 순간순간 보이는 창틀 밖의 세상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밖은 정상이다. 마주 쥔 그녀의 손을 따라 떨림이 전해져왔다. 추위에 의한 떨림은 아니었으리라. 괜찮을 거야, 괜찮아. 수백 번이고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초점 잃은 눈동자가 까만색을 머금고 있다. 아무런 의지도 없는 그 눈이 슬펐다. 금방 끝나니 이쪽에서 기다리세요. 이따 저희가 나.. 2023. 9. 3.
[웹소설/단편소설] 충동 폴짝. 기차 사이를 가로질렀다. 몇개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빠른 속도였지만, 분명 마주 쳤다고 생각했다. 자살하는 이와 눈이 마주친 아파트 주민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떠나가는 기차의 뒷꽁무니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서운했다. 분명 반가웠는데 서운했다. 떠나간 철로에 다시금 발을 올렸다. 진동의 여운이 발바닥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성기가 떨리고, 언제 섹스를 했던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2주 정도였던가. 뜻모를 표정을 지었던 여자였다. 본인조차 왜 웃는지 모르는 멍청한 여자. 아니 애초에 감정이란 것이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그것부터가 의문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철로가 앞으로 살아야될 삶인 것만 같아서 가슴이 답답했다. 왜 나는 살아야 하는가. 나는 왜 살아있는가. .. 2023. 7. 12.
[웹소설/단편소설] 두 아이 필리핀에 두명의 여자가 있었대요. 구분하기 위해 한명은 지노, 한명은 리나라고 부르기로 하죠. 그 둘은 절친한 친구였어요.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둘은 같은 동네, 옆집에서 살았거든요. 그냥 별다른 계기도 없이 둘은 친해진거에요. 둘은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열심히 무언가 배우고 경험했어요. 지노는 11살에 처음으로 남자와 잠을 잤어요. 검정색 그림자였어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거칠게 자신을 다뤘어요. 지노가 기억하는 것은 한가지 였어요. 시발년아.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그림자는 전봇대만큼 들떠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무척 아팠지만, 아줌마는 원래 어른이 되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어요. 지노는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어른이고 엄마도 아팠다고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그렇.. 2023. 7. 12.
[웹소설/단편소설] 숙면 두시간 뒤면 아이를 만난다. 지금 내가 해야될 일은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사는 일. 하지 말아야 될 일은 괜스레 감정적인 상태가 되는 일. 억울하다고 하면 억울했고, 내 탓이네 라면 또 내 탓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그 일이 무뎌진다. 22살 미혼모의 삶은 그래서 고달프다. 누나, 이따 형호 데리고 7시까지 가면 되는거지? 동생 민오의 문자가 왔다. 7시라는 시간이 정해짐에 뭔가 목이 답답하다. 세시간 전에 타놓은 식은 믹스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어째서인지 대답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문득, 문득 떠오른 그 날의 기억이 다시금 뇌를 뒤집어 놓았다. 6년이 지났고, 그 6년은 시벌 엿같은 을 내탓이네, 내탓이오 로 돌려놓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응어리진 그 무엇이 남았다는 것을 나는 .. 2023.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