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으로 오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겨울임에도 손에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간호사의 걸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토요일 오후, 공식적인 영업이 끝난 병원의 복도는 어딘지 모르게 텅 비어 보였다. 그 공간을 블라인드를 적신 햇빛이 메우고 있었다. 먼지가 둥실거리는 화창한 창틀을 보니 어딘가 다른 세계 같았다. 고요했다. 순간순간 보이는 창틀 밖의 세상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밖은 정상이다. 마주 쥔 그녀의 손을 따라 떨림이 전해져왔다. 추위에 의한 떨림은 아니었으리라. 괜찮을 거야, 괜찮아. 수백 번이고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 초점 잃은 눈동자가 까만색을 머금고 있다. 아무런 의지도 없는 그 눈이 슬펐다. 금방 끝나니 이쪽에서 기다리세요. 이따 저희가 나오면 저쪽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저쪽, 에는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녹슨 철문이 있었다. 최소한의 말을 마친 간호사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저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간간이 창문을 따라 들어온 바람에 블라인드만 출렁였다. 그 일렁임에 그림자가 요동쳤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조심스레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울지도 웃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뒤편으로 난 작은 창문 너머로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한파는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을 몰고 온다. 다녀올게라는 말을 끝으로 그녀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어’라든지, ‘응’ 혹은 '힘내'와 같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자동문이 열렸고 밝은 빛이 몇몇 사람들의 그림자를 만들었고 나는 그 그림자의 크기에 가려져선 아무것도 못 한 채 멍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수술은 시작되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네가 우리에게 온 것은 두 달 전이었다. 우리는 네가 오기 한참 전부터 너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너의 이름에는 울림소리가 들어갔으면 했고, 집안일의 분담에 대한 이야기와 부모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고민의 끝에는 항상 행복함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녀는 네가 나의 눈매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네가 그녀의 코와 입술을 닮았으면 했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었다. 그냥 우리가 있고, 네가 있다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만 같았다. 한 달 전 그녀는 내게 정말로 너를 갖고 싶냐고 물었다. 그날은 첫눈이 왔고 그녀가 6주 넘게 생리를 하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그때 그녀를 안으며 당연하다고 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정말로 바랐던 일이었으니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소복이 쌓이는 눈처럼 미소지었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환하게 웃는 그녀와 나, 그리고 눈을 처음 본 네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로부터 3일 후 나는 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뻤던 것은 당연했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온 마음으로 너를 사랑했다. 시작은 크고 좋은 집에서 하지 못하더라도 조금씩 서로 아끼면서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가능할 것만 같았다. 아니,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부모도, 그녀의 부모도 모두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으니까. 무엇보다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너의 부모가 되어 갔다. 보다 더 장래성이 있는 직업에 대해 고민했고 주말 아르바이트를 알아봤다. 생에 이토록 활력이 넘쳤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들떠있었다. 그랬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장 어디에서 살 거며, 애가 생기면 한 달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지금 그놈 그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다. 철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당장 병원으로 가자는 부모님을 붙잡고, 그녀는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울면서 매달렸다고 했다. 한 달 전 내게 고백을 한 날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왔다고 했다. 너의 이름을 고를 때도, 함께 살 집을 알아볼 때도. 매일매일 그녀는 그녀 나름의 최선으로 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답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것은 생에 활력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였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을 함께 봤던 그 날 밤, 무너지는 그녀의 곁에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이 그저 열심히 살겠다는 내 자신이 점점 초라해졌다. 무한한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결국 나는, 내가 너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부모님의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는
너를 탓하면 안 된다. 내 잘못이다.
채 10분도 되지 않아 간호사가 나왔다. 지금 회복실에 들어갔어요. 같이 계시다 한 시간 정도 후에 대기실로 나오세요. 저희도 퇴근해야 하거든요. 네. 간호사는 눈짓으로 저쪽, 어딘가 위치한 철문을 다시 가리켰다. 곧이어 의사도 나왔다. 복도에는 서둘러 돌아가는 둘의 발소리만 남았다.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질 만큼 떨렸다. 철문에는 어떠한 명칭도 붙어있지 않았다.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축복이 결여된 곳에 그녀가 홀로 누워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조금씩 죄어왔다. 천천히 철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어디선가 한기가 몰려왔다. 그곳은 회복실이라기보다 창고라 불리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곳곳에 벽지는 훼손되어 시멘트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고 바닥에는 갖가지 사무용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이동하지 못할 것만 같은 이동식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작은 창으로 들어온 하얀 빛이 그녀의 자그마한 발을 비췄다. 다리에 난 멍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웅크린 채 어두운 구석 어딘가를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가가 촉촉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공간을 채운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이었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있는 그녀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끅끅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이 아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묻지 않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게도 끅끅 소리가 났다. 숨이 거칠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너는 이제 없다. 너는 이제 없다. 이제서야 그 실감이 나를 덮쳐왔다. 이렇게나 순식간이다. 우리가 살아온 생애 있어서 두 달은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다. 하물며 10분은 순식간이고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 그런 시간이다. 너는 그 잠시의 시간을 살았다. 나는 그 잠시를 평생 기억할 참이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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