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소설/단편소설] 두 아이

by 어푸푸푸 2023. 7. 12.

 

필리핀에 두명의 여자가 있었대요. 구분하기 위해 한명은 지노, 한명은 리나라고 부르기로 하죠. 그 둘은 절친한 친구였어요.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둘은 같은 동네, 옆집에서 살았거든요. 그냥 별다른 계기도 없이 둘은 친해진거에요. 둘은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열심히 무언가 배우고 경험했어요.

 

지노는 11살에 처음으로 남자와 잠을 잤어요. 검정색 그림자였어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거칠게 자신을 다뤘어요. 지노가 기억하는 것은 한가지 였어요. 시발년아.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그림자는 전봇대만큼 들떠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무척 아팠지만, 아줌마는 원래 어른이 되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어요. 지노는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어른이고 엄마도 아팠다고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그렇게 학교를 빠졌어요.

 

리나는 11살에 이사를 했어요. 꽤 넓고 크고 크고 컸어요. 전봇대만큼 높았고 검은 그림자가 크게 지는 집이었어요. 아빠가 웃는 날이 늘었어요. 학교는 전학을 갔어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래요. 친구들은 조용하고 얌전하고 말이 없어요. 지노 같은 친구는 한명도 없어요. 모두가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오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학교를 다녔어요.

 

무슨 짓이니?

 

리나의 두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어요. 놀란 도우미는 달려가서 순백의 천을 가지고와 그녀의 팔목을 감쌌어요. 지노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오는 이유를 몰랐어요. 다리가 후들후들거리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몇몇은 웃으며 돈을 흔들었어요. 지노의 동공도 흔들렸어요.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은 돈이에요.

 

리나는 지노가 보고 싶었어요. 학교를 마치고 예절 선생님의 수업을 빠지고 지노의 동네, 아니 둘의 동네로 달려가요. 달리고 달리고 어느새 하늘이 흥건하게 물든 밤, 지노를 발견했어요. 리나는 지노에게 손을 내밀었죠. 지노는 눈만 깜빡이고 있었어요. 소보다 느린 속도로 깜빡, 꿈뻑. 리나는 어리둥절 했어요. 지노는 어리둥절했어요. 바닥에 주저앉은 지노를 일으키려는 리나의 가슴 주머니에서 만년필이 흘렀어요. 지노는 그 만년필을 멍하니 보더니,

 

들고

 

가슴을 찌르기 시작했어요. 리나는 놀랐죠. 당연하게도 말렸어요. 지노의 가슴팍에는 안드로메다 모양의 자국이 남았어요. 지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리나는 내가 어렸을 때도 이랬던가 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지노의 팔을 당겨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면 리나도 지노를 아직 친구라고 생각하나봐요. 둘은 마주보게 되었어요. 둘의 머리 위에 위치한 전봇대 전등이 둘을 평등하게 비췄어요.

 

있지, 리나야.

 

지노의 입이 떨어졌어요. 리나야. 어른이 되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들까? 어른? 리나는 어른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없었어요. 어린이도 이렇게 힘이든데 어른은 더 얼마나 힘든 걸까요? 지노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어요. 지노는 리나에게서 나는 향이 너무너무 좋다고 느꼈어요. 리나는 지노에게서 나는 향이 나무너무 지저하다고 느꼈어요. 리나와 지노는 한동안 전봇대 아래서 마주보고 앉아있었어요. 말은 필요없어요. 눈만 꿈뻑, 깜빡.

 

쓰레기.

 

쓰레기였어요. 리나는 금세 주변에 널린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쓰레기에서 너랑 비슷한 냄새가 난다라고 말하진 않았어요. 리나는 착하고 착하고 친구를 배려하는 예의바른 아이니까요. 지노의 얼굴이 일그러져요. 리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요. 지노의 동공이 커지는 만큼 리나의 심장은 두근거려요. 시발년. 순간 거대한 어둠이 둘에게 찾아와요. 짙게 갑작스럽게 역겹게. 리나는 찰나의 순간 어둠에 별이 없다고 생각해요. 안드로메다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검은 그림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어요. 여기었네, 이 시발년. 지노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검은 그림자의 눈이 그렇게 말하거든요. 널 찾았다. 널 먹겠다. 널 때리겠다. 돈은 주겠다. 리나는 영문모를 아저씨에게 머리채를 잡혀요. 아프다고 소리를 치지만 벗어나긴 힘들어요. 전봇대만큼 굵은 아저씨의 팔뚝이 그녀의 목을 휘어감아요.

 

그만해요. 그만, 그만!

 

지노는 리나를 검은 그림자의 팔에서 떼어내려 안간힘을 써요. 검은 그림자는 화난 들소같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어요. 지노는 리나의 가슴팍에서 만년필을 꺼내 검은 그림자의 팔뚝에 몇번이고 꽂아넣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에게는 매가 약이라는 엄마의 말이 생각나요. 검은 그림자의 팔뚝에는 촘촘히 은하수가 새겨져요. 아프지도 않은가 봐요. 이윽고 또 하나의 성난 전봇대가 지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어디론가 향해요. 모든 일이

 

안드로메다로 향해가고 있네요.

 

지노는 리나와 아침을 맞이해요. 리나는 아파요. 등도, 가슴도, 배도, 골반도 허벅지도 종아리도. 그리고 다리 사이에서 피가 흘러요. 지노는 조용히 수건으로 리나의 피를 닦아줘요. 지노는 이제 피가 나지 않아요. 지노는 이제 눈물도 나지 않아요. 리나는 천장만 보고 있어요. 수건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난다고 생각해요. 지노도 리나도 그저 눈만 깜빡, 꿈뻑 천장만 바라봐요. 둘은 이제 눈을 마주치지 않아요. 침대 한켠에는 몇장의 지폐가 떨어져있어요. 지노는 고민해요. 리나에게 얼마를 줘야 할까요? 지노는 우선 리나에게 말해줄 것이 있어요. 리나야.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해. 지노는 기분이 이상해요. 싫은데 좋아요. 리나에게서 자신과 같은 냄새가 나요. 좋은데 싫어요. 리나의 만년필 촉이 부러졌어요. 싫은데 좋아요. 리나는 여전히 눈만 꿈뻑여요. 그리고 작게 속삭여요.

 

어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웹소설/단편소설] 너의 시간  (1) 2023.09.03
[웹소설/단편소설] 충동  (0) 2023.07.12
[웹소설/단편소설] 숙면  (0) 2023.07.12
[웹소설/단편소설] 비상  (0) 2023.07.12
[웹소설/단편소설] 약육강식  (0) 202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