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학교를 가지 않았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할머니 곁에 있어드리고 싶었다. 예전엔 이런 날이야 말로 대목이지라며 집 밖을 나섰던 할머니였지만 얼마 전 그 사고 이후로는 발도 말도 멈췄다. 선생님의 전화가 두 번. 친구의 안부가 한 번. 그리고 여름이 지난 후론 누구도 찾지 않았다. 그렇게 비만 오면 우리 집은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무인도 같이 둥둥 떠있었다.
할머니의 손목엔 두 줄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한 줄은 알고 한 줄은 몰랐다. 딱히 묻진 않았다. 할머니의 인생이 고달프고 험난했던 것은 내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침이 와도 깨지 않던 아비가 저녁을 지나 몸을 일으키고 온 밤을 헤집고 돌아온 후 다시 온 방을 헤집어 놓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온 머리를 헤집어 놓았으니까. 기껏해야 천원이었다. 소주 한병이 900원이던 시절, 기껏해야 천원이었다. 엄마는 진작에 집을 나갔고, 할머니는 진작에 박스를 주웠다. 그렇게 바꿔온 돈이 천원. 온 동네를 뒤집어 엎고 만든 천원은 온 집안을 뒤집어 엎은 그의 손에 턱. 턱쳐들어 올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손목에 예쁜 두 줄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한움큼.
일어났어?
요지부동의 할머니 등. 빗소리가 유난스레 크게 울렸다. 잠에서 깬 것은 분명한데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빗소리를 들으셨겠지. 할머니의 마음은 담배 핀 폐와 같을까. 구멍이 쏭쏭 뚫렸지만 그걸로라도 숨을 쉬려는 억지스런 삶이려나. 창 밖은 저녁과 같은 어둠. 시계는 오전 열시 사십 육분. 할머니의 충격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할머니와 둘이서 살게된지도 어느덧 5개월. 어쩌면 할머니는 지난 몇개월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일지도 모르겠다고 감히 생각했다. 불을 켤 수 없어 어둠이 깃든 창문 앞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날도 이렇게나 어두웠고 이렇게나 구멍이 쏭쏭 뚫린 듯했다.
할머니?
라고 불렀던 내 앞에는 이런 날이 대목이라며 나섰던 그 분이 쓰러져 있었다. 머리에는 작은 상처와 함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길 옆 전봇대에는 누군가의 수능 문제집이 젖어 있었다. 할머니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을까. 그 전날에 난 문제집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경찰이 몇번 다녀갔다. 주변 카메라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사건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눈만 깜빡이며 가끔 눈물을 쏟았다. 난 비에 젖은 문제집을 집으로 가지고 와선 며칠에 걸쳐서 말렸다. 무거웠고, 무서웠다. 할머니는 여전히 눈만 깜빡였다. 며칠 뒤 경찰이 다시 찾아왔다.
이 분 아세요?
알죠. 알아요. 네. 그렇군요. 아버지네요. 할머니의 눈에서는 다시금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찰은 모자를 벗고 한숨만 들숨날숨. 할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저 멍했다. 경찰들은 곧 돌아갔다. 그리고 곧 내 아비라는 인간이 잡혔다는 소문이 들렸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로썸 게임이 플러스로 돌아선다. 그 인간이 깎아먹던 집안이 조금씩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아니었다. 할머니는 말을 잃었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비가 오는 날도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도 말을 잃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가을 장마가 그친 어느 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살은 아니었다. 두 줄이 세 줄이 되진 않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박스를 덮었다. 본인이 주워온 박스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수능 문제집과 어릴 적 썼던 충효일기를 꺼내와 둘렀다. 할머니의 몸 주변에는 둥근 오로라가 감싼 것 같았다. 누런 신문지와 신발과 옷가지들도 가져와서 둘렀다. 오로라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평온한 얼굴로 얌전히 누워있었다. 밖에서 비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밖으로 뛰어나가 슈퍼에 들러서 라이터를 샀다. 200원. 내 전재산이었다. 책 가방을 열고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쉽게 불이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몇번 손을 데었다. 불 냄새가 비 냄새를 압도했다. 별 수 없이 교과서를 한 장씩 찢어 할머니 위로 뿌렸다. 뿌리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가루를 뿌리는 기분이 들었다. 낱장이 확실히 잘 붙었다. 어두운 방, 구석에 빨간 불이 타올랐다. 벽지에 붙은 곰팡이들이 타올랐다. 연기가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쩌면 이 무인도를 날아오르게 만드는 구름이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 개소리. 아니다. 아무렴, 그럴지도 모른다. 불은 점점 활활, 타올랐다. 도덕이라고 적힌 종이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곧,
나도 할머니도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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